대참사의 시드니 ∼ 호바트 레이스 -장영주-

|2010-11-17|조회수: 3579

(2001. 3)

 

대참사의 시드니 ∼ 호바트 레이스

 

1998

 

“검사관에 따른 사실 인정과 권고”

 

레포트 Bob Ross

 

1998년 12월 27일, 사이클론급으로 발달한 저기압이 퍼스 해협에 걸쳐서 115척의 시드니~호바트 경기 플리트를 직격했다. 80노트의 풍속과 12m에 이르는 파도에 따라 전복한 요트 또는 라이프 래프트에서 6명이 사망, 5척이 침몰, 66척이 리타이어, 55명의 크루가 구조되었다. 그 구조 활등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해난 구조사상 최대의 것이었고 25대의 항공기, 6척의 선박, 약 1000명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림> 2000년 12월 26일 몇 가지인가의 교훈을 가슴에 안고 시드니를 스타트하는 시드니~호바트 레이스 2000참가정 플리트

 

2000년 12월, 뉴사우스 웰즈 주 검시관(檢視官)이 2년 동안에 걸쳐 마루리한 사고조사결과와 권고가 발표되었다.

 

사실의 인증

경기를 주관한 크루징 요트 클럽 오브 오스트레일리아(이하 CYCA)는 사고 직후에 검증위원회를 설치하여 신속하게 사고 경과와 개선점을 보고함과 함께 앞으로의 경기 참가규정을 개정하게 되었다.

뉴사우스 웰즈 주 검시관인 존 애번시는 CYCA의 사고 후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동 클럽의 1998년 경기운영위원회를 사고 심리 결과 속에서 엄중하게 비판했다.

애번시 검시관은 CYCA가 독자걱으로 한 조사 결과에 바탕을 두어 경기참가 규정의 변경점은 검시관 자신의 권고 일부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들 변경점에는 통신 기술, 안전 비품의 향상, 크루 트레이닝의 필수, 기상청에 따른 경기 기상예보 따위가 포함되어 있다.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한 단열재를 갖춘 라이프 래프트의 장비를 의무화한다는 검시관의 권고에 따라 지금까지 사용이 인정돼 온 4타입의 라이프 래프트를 2000년의 경기에서 CYCA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 모델은 RFD, ME, RFD ME/petrol, 그리고 Pro Saver이다. CYCA는 이것들을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고 검시관에게 판단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CYCA의 이 발표는 검시관의 심리 결과가 발표된 2000년 12월 12일로부터 2일 뒤, 즉 2000년 동 경기의 스타트 12일 전에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해당하는 라이프 래프트를 갖지 않은 경기 참가자들은 규정에 맞는 래프트를 찾아 헤매다가 참가를 포기하는 사람도 나왔다.

검시관으로부터 1998년 당시 경기 디렉터의 역할에 대하여 통력한 비판을 받은 필 톤프슨은 12월 13일, 2000년 경기에서 그때의 진용은 물러나고 CYCA는 2000년의 경기는 딜렉터 부재로 벌인다고 결정했다. 경기는 해군소장 크리스 옥센볼드가 책임자가 되는 경기위원회에 따라 실시되었다. 옥센볼드는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퇴역 군인이며 과거 10회에 걸쳐 시드니~호바트 레이스를 경험하고 있다.

<그림> 시드니~호바트 레이스 : 1945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 전통의 외양경기. 코스튼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타스마니아 섬의 호바트까지 360마일로 해마다 연말에서 연초에 걸쳐 경기가 벌어진다. 이 시기의 버스해협은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7년에는 참가정 129척중 58척이, 1984년에는 152척 가운데 105척이 리타이어했다. 1998년에는 참가정 115척 충 66척이 리타이어,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6명, 선체표기(침몰 포함) 5척, 전복 6척, 헬리콥터에 따른 구조자 42명이라는 처참한 경기였다.

위원회의 다른 멤버는 CYCA의 새로운 최고책임자는 그렌 버그, 로버트 바디낙(타스마니아 로이얼 YC), 하워드 엘리옷, 제프 래빗이었다.

 

경기운영위원회의 능력

애번시 검시관은 필 톤프슨, 마크 로빈슨, 하원드 엘리옷들로 이루어진 1998년 경기운영위원회에 대하여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경기운영위원회는 사고가 발생한 시점에서 모든 의미로 경기 플리트에 대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경기가 스타트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의 사이 CYCA 세일링 오피스에 전임(專任)의 스탭이 부재였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시간내에 전임의 스탭이 있었으면 기상청 직원이 시도한 스톰의 경고는 전달되었을 것이다.

기상청 직원은 12월 26일 오후 1시 지나서 CYCA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 전화 연락의 긴급성을 이해할 수 있는 누구와도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몇 개인가의 구조단체에 연락하였으며 그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해상보안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기상청으 직원 두 사람이 느낀 긴급성은 그들의 직속 상사는 느끼지 못 했다. 두 사람의 직원이 최초에 시도한 전화 연락 후, 기상청의 누구도 CYCA에 연락하려고 하지 않았다. 기상청의 발표는 이 부분이 아직 불명료하다. 기상청 직원의 최초 시도 뒤, 어찌하여 CYCA의 누구 한 사람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만일 기상청 직원이 참으로 경기 참가정의 안전을 염려한 것이라면 - 나는 그렇다고 믿지만 그 염려를 CYCA 멤버 특히 톤프슨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애번시 검시관은 경기운영위원회의 3인이 기상청이 기상 예보를 위해 채용하고 있는 풍속과 파고를 해석하기 위한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했다는 것을 추궁했다.

“이 지식 부족은 특히 경기운영위원장인 톤프슨에 관해서는 변명은 통용되지 않는다”고 검시관은 말했다.

경기운영위원회가 12월 27일 시드니에서 호바트로 이동함에 따라 이 중요한 기간 중의 레이스 플리트에 대한 컨트롤 또는 매니지먼트가 마비되고 말았다. 레이스 플리트에는 텔스트라 컨트롤(Telstra Control)경유로 매시 30분에 연결이 가능했다.

기상청의 예보에서는 12월 27일 오전 7시, 윌슨즈 프로몬트리 지역에서 풍속은 70노트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그 기상 정보를 안 타스마니아 로이얼 YC의 볼런티어 스탭은 경기운영위원회에 알리기 위해 정보를 레이스 컨트롤 센터의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이 정보는 한시라도 빨리 레이스 플리트에 전달했어야 했다.

“경기운영위원회는 그때에 일어나려고 하는 것 또는 일어나고 있는 것의 중대서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상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레이스 플리트와의 무선통신체제, 즉 1대의 HF와 1대의 VHF에 따른 텔스트라 컨트롤로 115척과의 통신을 담당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랄 수밖에 없고 부적당하다.”

검시관은 CYCA 전 세일링 매니저인 보브 프리낙과 전 레이스 디렉터였던 레그 홀즈에 따른 경기참가규정의 내용 검토, 세일링 오피스의 상조, 세일링 오거나이저의 거소 파악, 레이스 플리트에 대한 정보 전달 그리고 볼런티어 단체와 클럽 직원과의 연락에 관한 과거의 실적에도 주목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프리낙과 홀즈가 이해하는 조직은 톤프슨이 시드니~호바트 레이스의 레이스 디렉터에 취임한 시점에서 기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에 관한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톤프슨은 1995년부터 1998년의 임기 중에 조직의 질이 악화되었고 문제로 발전되었다는 것에 관하여 바른 인식을 하고 있지 않다. 톰프슨이 증언한 때에 그는 ISAF 경기 운영 코스를 바로 수료하는 뜻을 언급하지 않았고 경기운영위원회가 그들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톰프슨의 인식 결여와 나중에 증언 때의 문제 인식 결여에서 장차 같은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에 그가 그것을 인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상상된다.”

적극적인 조치

애번시 검시관은 1998년의 경기는 확실히 “대참사”였다고 기술했다. 6명이 목숨을 잃었고 물적 손실도 헤아리기 어렵다.

“이 실리(審理)를 하는 동기는 6명이 어떻게 해서 초기를 맞이했는가를 아는 것과는 별개로 하고 이와 같은 참사가 다시금 일어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건설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찾아내고자 하는 바램이다. CYCA는 이 비극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사고 후의 상세한 조사를 하였을 뿐 아니라 이 경기 참가자로서 안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한 많은 혁신적인 개정을 했다.

개정한 것 중의 몇 가지인가는 말하자면 참가자에 대한 요구이고 반드시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스포츠를 이룩하는 일부분이 빼앗기고 마는 엄격주의적인 요구라고 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개정된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요팅계는 이번의 사고와 같은 규모의 참사를 다시 맞을 여유는 없다.”

참가규칙 개정에 따른 비용은 요트 오너와 크루가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구조에 든 비용, 이것은 단순히 돈만의 얘기가 아니라 구조대원 자신의 현실적인 위험도를 생각하면 요트계가 부담할 액수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심리의 마지막 단계에서 검시관 자신은 CYCA가 독자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1999년의 경기까지에 근본적인 개혁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Satcom C”의 장비나 크루의 트레이닝 참가가 의무화되었고 기상청 직원은 더욱 깊이 경기운영위원회에 경기를 통해서 관여하게 되었다.

몇 가지인가의 개정은 “의무”이며 몇 가지는 “추장”이었다. 몇 가지인가의 케이스에서 CYCA의 “추장”은 검시관 권고의 일부였다.

“심리 기간 중, 요트의 세일링에 관한 많은 측면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예를 들면 시 앵커나 드러그의 사용, 스톰 세일의 사이즈와 타입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은 결국 세일러가 알고 있어야 할 시맨십의 문제이므로 내가 추장해야 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희생자와 조난한 배에 관한 공식 발표

6명의 희생자에 대한 사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공식 발표가 있었다.

그린 로데릭 찰스는 새프티 하니스를 걸고 있던 래니어드(티서 라인) 끈허져서 <스워드 오브 오리온>dpt 물에 떨어짐에 따라 1998년 12월 27일에 익사했다.

부르스 레이몬드 가이는 <비지니스포스트 나이어드>가 롤 오버했을 때 지병인 국소적 혈액부족 심장병이 발병하여 사망.

필립 레이몬드 찰스 스케그스는 같은 <비지니스포스트 나이어드>가 전복한 때에 의장품에 휘말려 수중에 머문 채로 익사했다.

존 위리엄 딘, 제임스 마이켈 롤러, 마이켈 바니스타 3명은 <위스톤 처칠>의 라이프 래프트 잔해를 붙들고 잇을 때 돌연 파도에 휩쓸려 12월 28일에 익사했다.

 

<스워드 오브 오리온>

검시관의 조사에 다르면 영국의 올림픽 대표 세일러인 그린 로데릭 찰스는 참가정 <스워드 오브 오리온>이 360도의 롤 오버를 했을 적에 새프티 하니스의 래니어드가 솔기(기운 자리)에서 잘려 물어 떨어졌다. 이 래니어드에는 제조원 라벨 “Tuff Marine Australia”가 붙어 있었으며 그 상품이 오스트레일리아이 기준 “AS2227”을 충족했다는 것이 써져 있었다. 그러나 충격시험소에 따른 이 래니어드으 테스트 결과를 묻고 있는 애번시 검시관은 “그린 찰스가 사용한 래니어드가 그 제조의 단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문을 품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검시관이 한 권고 중에는 뉴사우스 웰즈 주정부의 공식 취급 부서에 대하여 “Tuff Marine Australia”의 라벨이 잇는 하니스와 래니어드 게다가 그것에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을 시장에서 수거했으면 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검시관은 나아가 크루가 사용하는 모든 하니스에 크러치 스트랩(구부리는 밸트)을 붙일 것, 그리고 새프티 하니스 래니어드에 관한 오스트릴리아 기준 AS2227의 전망을 검토할 뜻을 제안했다.

찰스는 해면에서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 또는 직후인 12월 27일 17:10경에 사망했다. 그는 필시 롤 오버에 따라 부상하여 떠 있을 수가 없었다.

<마가렛 린틀Ⅱ>는 디스마스트한 <스워드 오브 오리온>을 찰스가 찰스가 최후에 수면에서 확인되고부터 1시간 35분 뒤에 목격, 그 위치를 통신중계선인 텔스트라 컨트롤에 전하고 그대로 세일링을 계속하고 있다.

 

마가렛 린틀Ⅱ

<마가렛 린틀Ⅱ>는 <스워드 오브 오리온>을 목격한 때 엔진이 고장나 있었다. <스워드 오브 오리온>의 가까이 머무르기 위해서는 세일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마가렛 린틀 Ⅱ>의 리차드 파셀 스키퍼는 <스워드 오브 오리온>의 원조를 엔진 없이 시도한다면 <마가렛 린틀Ⅱ>와 크루의 목숨이 위험할 것으로 판단하여 원조를 단념했다고 한다.

애번시 검시관은 “상황을 생각하면 그의 행동을 지지한다. 파셀 스키퍼가 말한 대로 그 자신의 배와 크루의 안전을 <스워드 오브 오리온>의 책무에 우선시키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고 말하면서 파셀 스키퍼와 그 배의 내비게이터에 대하여 <스워드 오브 오리온>에 HF 또는 VHF에 따른 교신 혹은 VHF의 국제구난주파수 채널 16의 확인을 시도하지 않은 것에 관하여 비난하고 있다.

“리차드 파셀 스키퍼는 그가 최초에 텔스트라 컨트롤에 보고하는 지시를 하였다면 적어도 3시간 반 동안 내비게이터와 얘기를 나누고 있지 않다. 이 시간이야말로 파셀 스키퍼는 <스워드 오브 오리온>과의 교신하는 시도를 지시해야 했다.”

검시관은 무선통신의 담당을 내비게이터에게 일임하고 자기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았다는 파셀 스키퍼의 견해를 무리쳤다.

 

비즈니스포스트 나이아드

<비지니스포스트 나이나드>는 CYCA 세일링 오피스가 간과함에 따라 IMS 클래스의 경기 참가가 인정되었다.

IMS증서는 1998년 10월에 발행된 것으로서 그것에 따르면 <비지니스포스트 나이아드>의 복원력 소실각(消失角:LPS)은 104.7도였다. 이 숫자는 과거에 시드니~호바트 레이스 참가 경험이 있는 배에 대한 예외규정에 따르더라도 적어도 110도(통상 115도) 있을 필요가 있었다.

요트 디자이너인 앤디 도베은 증서의 수치는 계측위원의 계측 미스에서 나온 숫자로 실제에는 109.5도였다는 견해를 나타내서 애번시 검시관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상선대학의 시험에서 하니스 래니어드의 탈착 곤란도가 나타났지만 필립 스케그스의 사인은 하니스를 래니어드에서 탈착할 수 없었던 것이 원인인가 또는 전복한 헐의 아래서 로프에 휘말렸는가 혹은 그것들 양쪽이 원인이 되어 있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윈스톤 처칠

<윈스톤 처칠>은 파도에 따라 받은 좌현 쪽의 손상이 원인이 되어 침몰했다.

보트 빌더인 이안 파드류와 세스 킬케이에 따르면 손상은 헐 플랭킹이 스템과 만나는 부분의 30cm에 걸친 코킽재의 결함과는 관계가 없다.

검시관은 <윈스톤 처칠>의 라이프 래프트 하나에 탄 존 스탄레이, 존 깁슨, 존 데인, 제임스 롤러, 마이켈 바니스타로서도 전복한 래프트 안에서 산소의 결핍을 눈앞에 당했을 때, 이성이 있는 판단을 내릴 만큼의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림> 버스해협을 트라이 세일 한 장으로 버티고 있는 IMS 레이서 <브라스레드>. 최대 풍속 80노트, 파고 12m로 보고되었다.

 

“그들이 놓인 상황에서는 래프트의 천정에 구멍을 내는 것은 당연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권고 사항

안전과 생존

오스트레일리아 세일링연맹과 시드니-호바트 레이스를 주최한 크루징 요트 클럽 오브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권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이퍼브(EPIRB)

“크루는 퍼스널 긴급위치지시 무선표지(이하 퍼스널 이퍼브)를, 덱 위에는 모든 기상 조건 아래에서도 몸에 붙여 그 사용법의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퍼스널 이퍼브는 분별 없이 사용하게 되면 구조 쪽에 혼란을 불러오지만 크루의 훈련이나 협회와 관계 관청이 협력하여 크루의 훈련으로 이 혼란을 피할 수가 있다.

121.5Mhz 시스템은 수년 후에 시스템이 폐지되므로 406Mhz의 퍼스널 이퍼브의 장비가 바람직하다. 406Mhz는 또 구조 에리어를 20km에서 5km로 좁혀 준다. 경기 참가정은 온 보트의 121.5Mhz가 아닌 406Mhz 이퍼브를 1대 탑재해야 한다. 406Mhz 이퍼브에는 배 이름을 기록할 수가 있기 때문에 구조자는 “누가 언제”의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 라이프 래프트

“경기정에 탑재하는 팽창식 라이프 래프트는 “해상인면안전에 관한 국제조약(SOLAS)의 규칙15를 충족하고 있을 것” 이 기준은 USL(Uniporm Shipping Law : 선박탑재품의 표준규칙)의 요구보다도 높은 것이다.

<윈스톤 처칠>의 라이프 래프트에서 생환한 사람은 라이프 래프트의 안에 앉아 있을 적에 추워서 고통스러웠다.

ORC(Offshore Racing Council)는 2000~2001 특별규칙(SR) 안에서 단열성 판은 모든 SOLAS 래프트에 의무화되어 있고 모든 래프트가 그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을 것을 강하게 추장하고 있다.

애번시 검시관은 생환자의 증언, 의학적 고찰, SOLAS 기준의 요구 그리고 ORC의 추장을 감안하여 라이프 래프트에 저온 단열 호과를 갖는 판의 장비를 강력하게 권유함과 동시에 라이프 래프트 제조원에 대하여 라이프 래프트의 출입구의 폐쇄용 벨트의 점검을 촉구했다.

생환자의 증언에 따르면 출입구를 닫기 위한 무명 벨트는 대부분 푸는 것이 불가능했다. 또 생환자 쪽의 증언에 따르면 해면상의 검은색 물체는 확인이 어려우므로 부력 튜브의 원단은 “선명한 색깔”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기상예보

“요트경기에 참가하는 플리트에 제공되는 특별한 기상예보는 통산의 예측 풍속에 더 해 일어날 수 있는 순간 최대 풍속, 맞닥뜨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파고의 정보를 포함하여야 한다”

애번시 검시관은 기상청이 1999년 시드니~호바트 레이스를 위해 순간 최대 풍속과 예상되는 파고를 제공하기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이 예보의 예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코멘트했다.

“이 결정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참가자에게 바람과 파도가 가능성으로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 경기를 이어 가야 할 것인지를 자기들이 판단을 내리도록 되었다.”

 

● 배터리

“요트에 장비되는 배터리는 밀폐형 또는 젤형의 것이어야 한다.”

전복 또는 360도 롤 오버를 경험한 몇 척인가의 요트에서 배터리의 희유산(希硫酸)이 새어 덱 아래의 크루에게 영향을 주었다. 밀폐형 또는 젤형 배터의 장비는 2000년의 경기에서 CYCA에 따라 의무화되었다.

 

● 의류, PFD(라이프 재킷), 스토로브(Strobo)

“황천인 때 덱 위의 크루는 체온의 저하를 막아 주는 의복을 입어야 한다.” <스워드 오브 오리온>의 그린 찰스도 <윈스톤 처칠>의 크루도 서바이벌 슈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

ORC의 특별규칙 2000~2001과 오스트레일리아 세일링연맹의 경기규칙 1997~2000년판의 양쪽에서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한 따뜻한 의복과 퍼스널 프로팅 디바이스를 몸에 입도록 추장하고 있다.

또 서바이벌은 모든 크루를 위해 준비하여야 하며 그것은 몸의 모든 부분, 특히 머리, 목, 겨드랑이 아래, 가슴의 옆쪽, 넓적다리 사이 따위의 열을 빼앗기기 쉬운 부분에 단열을 해 두어야 한다.

<윈스톤 처칠>의 라이프 래프트에서 목숨을 잃은 세 사람은 체온 저하가 사인에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애번시 검시관에 따르면 25도를 밑도는 수온에서는 인간은 체온 저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또 <윈스톤 처칠>의 생존자는 Mae West 타입 PFD의 사용이 곤란했다고 증언하였고 구조자로부터도 Mae West 타입 PFD를 입고 있는 크루의 머리에 헬리콥터의 레스큐 스트랩을 통하기가 곤란했다는 보고가 있어 “Mae West 타입 이외의 PFD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되었다.

“크루는 어떠한 컨디션에서도 덱에 있을 때는 퍼스널 스트로보 라이트를 휴대한다.”

<윈스톤 처칠>의 라이프 래프트에서 승정원이 벗어났을 때, 75~100야드 떨어져 있는 스트로보 라이트가 점등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어 곧 그것이 짐롤라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같은 스트로보 라이트를 소지하고 있었다.

“75~100야드 떨어진 스트로보의 빛을 해면의 높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늘에서는 더 떨어진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검시관은 말했다.

 

● 정체(艇體)의 인식

“각 경기정은 하늘에서 그 요트를 인식할 수 있도록 헐 또는 덱에 인식용 표지를 붙인다.”

1998년의 수색 활동에서는 수색기가 디스마스트하고 있는 요트를 <윈스톤 처칠>로 잘못 알고 혼란이 생겼다.

수색본부는 이 정보를 믿고 무선중계선 <영 엔디버>로부터 전해지고 있던 <윈스턴 처칠>의 위치에서 벗어나 디스마스트한 요트로 향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모든 가능성으로 보아 <윈스톤 처칠>은 그 시점에서 이미 침몰했으며 디스마스트한 요트는 <스탠드 어사이드>였다고 생각된다.

이 오인에 따라 주간의 귀중한 수색 시간을 잃지 않았다면 수색기는 라이프 래프트에 타고 있는 생존자의 수색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었다. <영 엔디버>도 <윈스톤 처칠>의 메이디 발신 위치를 해가 지기 전에 찾아 나서서 구조 활동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윈스톤 처칠의 희생자는 다음 날 낮에까지 필시 살아 있었을 것이다”고 애번시 검시관은 말했다.

 

● 크루의 훈련

“적어도 참가정 크루의 50%는 요트의 안전과 서바이벌 코스의 훈련을 3년마다 받아야 한다.”

이것은 2000년의 CYCA 경기공시에는 요구되어 있다. 그것은 1998년의 경기 이후 CYCA가 진행하고 있는 안전 훈련 프로그램과 참가자의 자격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해상 서바이벌 코스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라이프 래프트에 타는 훈련, 부상자를 라이프 래프트에 태우는 훈련, 전복한 라이프 래프트에서 탈출하는 훈련, 헬리콥터의 구조 스트랩을 부착하여 매달려 올라가는 훈련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