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링계에서 활약하는 뉴질랜드라는 나라

|2013-12-16|조회수: 2545


세일링계에서 활약하는 뉴질랜드라는 나라


                                                    글         팀 제퍼리
                                                                옮긴이   요트도서편찬모임


  인구 440만의 작은 나라 뉴질랜드
  이 원고는 제34회 아메리카즈 컵 경기가 막을 내리기 직전의 시점에서 쓰고 있다. 바로 전환의 때를 마지할 것 같은 무렵이다. 그것은 이 원고를 집필하는 시점에서는 도전자가 방어자를 격파하여 이 전통 있는 유명한 트로피의 소유자가 바뀔 것 같은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1983년, <오스트레일리아Ⅱ>는 132년간에 걸쳐 컵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을 격파하고 그 전통의 단절에 획을 그었다. 그 이래 오늘날까지 10회의 아메리카즈 컵 경기가 개최됐지만, 이번에 에미레이트 팀 뉴질랜드가 오라클 팀 USA에 이기면 도전자가 컵을 쟁취하는 것은 6번째가 된다.

<데인 파커를 선두로 에미레이트 팀 뉴질랜드는 뉴질랜드 인으로만 구성하여 경기에 임하고 있다.>

  물론 뉴질랜드는 1995년과 2000년에 걸쳐 두 번의 아메리카즈 컵에 승리를 거두고 있으므로 이 트로피를 획득한 나라의 총수 자체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스위스의 4개국에 그친다.

  이 숫자를 보면 아메리카즈 컵이라는 경쟁에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고 누구나가 말하고 있는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그럼 뉴질랜드와 같이 작은 나라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대표하는 팀을 어떻게 하여 이길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작다는 것은 나라의 넓이를 말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전 국토의 면적을 합쳐도 미국 코로라도 주와 같을 정도에 지나지 않다. 결국 미국의 한 부분에 해당하는 크기라는 것이다.

  또 미국은 3억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지만, 뉴질랜드의 인구는 440만이다. 미국의 경제(GDP)는, 15조 달러가 넘고 뉴질랜드의 그것은  겨우 1,500억 달러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경제는 큰 기업 한 회사에 상당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그것은 오라클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의 규모와 꼭 같은 정도다. 오라클은 알다시피 랄리 에리슨이 이끌고 있는 회사다. 그는 오라클 팀 USA의 보스이며 또 제34회 아메리카즈 컵 이벤트의 실질적인 스폰서이기도 하다.

  미국과 뉴질랜드의 금메달 획득 수
  <오스트레일리아Ⅱ>의 스키퍼를 맡았던 존 바트란드가 일찍이 말한 것처럼 “스포츠는 젊은 나라가 세계를 향하여 큰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절호의 수단이다.” 미국은 작은 뉴질랜드에 견주면 정말로 강대한 거인이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의 총수를 보면 미국의 선수들은 지금까지 1,000개 이상을 획득하고 있다. 그에 반해 뉴질랜드는 36개다.

  그러나 그 경기 종목을 세일링에 국한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 차이는 엄청나게 좁혀든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는 1,200해리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정도로 지구의 외진 구석에 위치한 작은 나라임에도 나라의 크기를 훨씬 웃도는 힘을 세일링의 세계에서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일링에서 세계의 최고봉에 오르려고 하는 능력을 뉴질랜드에 안겨 준 것은 무엇 때문이였을까?

  19세기의 옛날, 뉴질랜드로 가는 유일한 수단은 배였다. 섬을 둘러싼 바다와 그 해안선은 그 나라의 발전에 있어서는 생명선이 되었다.

 
원 톤 컵 우승 때의 신문
  1970년대에 들어 아메리카즈 컵에 복수의 도전자가 참가할 수 있게 되었어도 도전을 위한 비용은 당시의 뉴질랜드로서는 너무나 고액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나라에는 도전을 위한 충분한 기술력도 없었고 빅 보트의 경험을 가진 세일러도 아직은 적었다.

  그러나 빅 보트 경기에는 큰 전환기가 찾아왔다. 1969년 크리스 파 제이드와 그의 크루가 독일의 헬고란드에서 개최된 원 톤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뉴스는 오클랜드 스타지의 일면 왼쪽을 장식했다. 이때 오른쪽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뉴스가 실렸다. 그것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다”였다.

  이것은 뉴질랜드에 있어 세일링이라는 것의 위치 부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때부터 세계 속의 세일링 리개터에서 뉴질랜드인들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많은 선수(세일러)들이 활기에 넘쳐 강력한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에 따라 이들을 길러냈다. 그것은 벨트 콘베어와 같은 세력으로 해마다 젊고 특출한 재능을 끊임없이 공급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세일링의 기회나 요트 클럽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젊은이들은 대환영을 받으며 격려 속에서 이 스포츠를 시작한다. 이 나라에서 세일링 혹은 요팅은 엘리트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87년, 아메리카즈 컵의 무대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뉴질랜드는 그 10년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던 도전과 캠페인을 차례로 실현해 나간다.

  앞에서 지적한 원 톤 컵에서 <레인보Ⅱ>의 승리에 이어 뉴질랜드의 세일러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우선 크로스 컵, 하와이의 켄 우드 컵, 영국의 어드미럴스 컵을 비롯하여 세계 속의 국제적인 메이저 이벤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포부도 치솟아 갔다. 1981년, 뉴질랜드의 국기를 단 요트가 세계일주경기에 참가했다. 피터 브레그와 그의 훌륭한 크루들은 이 처음 도전 뒤에도 같은 경기에 뛰어들기를 거듭하여 세 번째(1989-1990년)에 보란 듯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1983년의 아메리카즈 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이김으로써 스포츠계에서 가장 오랜 연승 기록을 가진 미국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뉴질랜드의 반응은 예상대로의 것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도 해낼 수 있다.

  1987년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처음으로 방어자가 된 대회인 때 뉴질랜드의 맨 처음 아메리카즈 컵 도전이 실현되었다. 그들은 드디어 이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처음 도전에서 뉴질랜드인들은 도전자 선발 시리즈의 결승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결승에서는 미스터 요팅의 별명을 갖고 있는 미국의 데니스 코너와 그가 이끈 백전 연마의 <스타스 & 스트라이프스> 팀에 패하고 말았다.

  데니스 코너와의 싸움에서 뉴질랜드인들은 귀중한 경험을 얻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은 2013년 현재에도 살아나고 있다.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을 살려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꿈꾸거나 바라지 마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메리카즈 컵이란 변화의 게임(game of change)이라는 것을 알라.

  그 뒤로 1988년과 1992년에 마이클 페이가 이끈 두 번의 캠페인은 두 번 다 불만과 실망 속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불만과 실망에서 배우면서 뉴질랜드의 세일링계는 그 힘을 지속적으로 착실하게 키워 나갔다.

  그리고 1995년, 피터 브레이크는 걸출한 캠패인을 이끌었다. 아메리카즈 컵은 이어서 뉴질랜드스 컵이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뒤, 그것은 다시 뉴질랜드스 컵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경기에서 결국 에미레이트 팀 뉴질랜드는 오라클 팀 USA에 패하고 말았다. 옮김이 풀이)

  옮긴이의 군더더기
  비스마르크는 일찍이 “슬기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만 배운다”고 말했습니다. 경험이란 내 것이 됐건 남의 것이 됐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우리에게 길라잡이가 되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경험은 한계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쳐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선험자(先驗者)로부터 경험담을 듣기도 하고 책이나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광범위하게 찾기도 합니다.

  위에 올린 기사는 우리의 무기력함에 대한 경고로 또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에 따라 외부의 자극도 필요합니다. 어느 모로나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뉴질랜드는 국가 경제력이나 인구 면에서도 우리와 견줄 수 없는 작은 나람임에도 세일링계에서는 세계의 정상국과 어깨를 겨르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약상을 보면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단체의 구성원들은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 단체의 집행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협회 정관에는 단체의 설립 목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도 목표도 전약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으니 모든 사업이 주먹구구식이고 즉흥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를 둘러싸고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짙게 깔린 안개는 좀체로 걷힐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도층의 사명 의식과 능력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아웃사이더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 우리 단체가 자극제가 될 만한 단편적인 기사라도 전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을 꾀하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다 그 주체는 사람입니다. 단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이것 말고 달리 왕도(王道)는 없습니다.


2013년 12월 16일
김학선, 윤종혁, 장영주, 정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