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c 출전 조진섭선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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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섭" 선수가 거제 옥포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c 동아일보)     

 

 

 

 

 

19847월에 한국의 조진섭선수는

로스앤젤레스Olympic 에 출전하기 위하여 Long Beach 로 가고 있었다.

옆에는 거화실업() 회장이었든 이화수님 그리고 대한요트협회 사무국장이었든 유승길님도 함께 동승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요트가 처음으로 Olympic경기에 출전하려 간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Olympic 경기

 

Olympic 에서 윈드서핑이 어느 보드 (board)

경기를 할 것인가에 관심들이 많았다. 독일제 윈드글라이드(Windglider)라는 보드로 한단다. 이 보드는 특유하게 바닥이 둥글다. 길이가 3.9 mlongboard에 속한다. 14Kg에 바우 헤드에 끈이 달려 있다. 데거보도(dagger board)가 있었지만 발을 끼는 풋스트랩 (footstrap)이 없었다. 세일은 6.5m 하나로만 경기를 한다.

 

 

윈드서핑 경기공시문 (Notice of Race)

발표되었다. 윈드서핑이 처음으로Olympic경기를 하지만 요트경기규칙 되로 경기를 하면 될 것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규칙 42조를 윈드서핑에 어떻게 적용할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규칙 42조 라는 것은 경기에서 속도를

내려고 펌핑(pumping)을 해서는 안 되고 세일을 심하게 흔들어서도 안 되고 몸을 많이 움직여서도 안 된다는 참으로 애매하고 고약한 규정이다.

 

 

윈드서핑에 42조가 적용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선 선수들은 펌핑(pumping)을 하지 못하고 세일을 가만히 들고만 있어야 했다. 또 세일을 심하게 흔들어서도 안 되고 붙들고만 있어야 했다. 그 이외에도 문제가 많았다. 제일 큰 문제는 하네스(harness) 문제다. 윈드서핑은 하네스(harness)”를 쓰지만 요트에는 하네스라는 자체가 없다.

 

 

 

"하네스"도 못걸고 "풋스트랩"도 못끼어 

 

 

요트는 역사도 오래되고 종류도 많지만

다 앉아서 탄다. 이번에 새로 생긴 윈드서핑만 유일하게 서서 탄다. 그래서 윈드서핑에만 하네스가 있는 것이다.

요트경기규정에 아무리 찾아 봐도 하네스라는것을 찾을 수가 없다. 비슷한 것도 없다. 하네스 라는것이 요트규정에 없으니까 하네스는 사용할 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네스를 걸지 못하고 손으로 붐(boom)

잡고 20-30Km씩 달려 가야하니 출전 선수들은 전부 녹초가 되었다. 하네스를 걸지 못해 고생을 하였지만 또 풋스트랩까지 없어 엄청 더 큰 고생을 하였다. Windglider에는 발을 끼는 풋스트랩 자체가 아예 없었다. 풋스트랩 없었으니까 발을 낄 수가 없었다.

 

 

Olympic 경기 중에 선수들이 경기도중

많이 넘어졌다고 한다. ‘하네스 를 못 걸고 풋스트랩 이 없으니 발도 못 끼고 붐(boom)만 잡고 20km 30Km를 타다보니 강풍이 왔을 때는 피곤에 겹쳐 그냥 넘어진 것이다.  번아웃 (burn out)으로 표현되었다. Olympic선수가 경기 중 넘어진다는 것은 초보자도 아니고 참으로 웃기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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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Olympic  경기에는 38개 국가가 출전하여 조진섭 선수는 34위를 했다. 조진섭 선수는 현재 인천에서 살고 있다.

 

 

 

 

 

조진섭 선수

 

 

조진섭씨는 지금의 전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

근교 에서 살고 있었다. 부친 조우현씨는 한강에서 뱃일을 하며 살았다. 배를 여러 체 가지고 유원지에서 놀러오는 사람들은 대여해주기도 했다.

해방 전 외정시대에는 춘천 소양 땜이 없었기 때문에 강원도 화천등지에서 서울까지 배로 바로 올수가 있어 댓목으로 한강까지 운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조진섭씨는 Olympic선수선발대회에서

천부적 바람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m 70 cm에 체중 56kg으로 저체중이지만 사진에서 보는 봐와 같이 엄청 근육체질이었다. 윈드서핑경기에 적합한 체격으로 평가 되어졌다. 83년 서울 안흥전자공고를 졸업 후 Olympic국가대표로 선발되자 대학진학을 미룬 체 윈드서핑에 열중했다.

 

 

주로 한강에서만 윈드서핑을 타든

조진섭에게는 바다에 가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어 애를 태웠다.

당시 대우조선의 김우중(金宇中) 요트협회 회장님의 배려로 거제 옥포에 있었던 대우조선 직원아파트에 머물면서 거제 옥포 해안바다에서 5개월 정도서 연습을 할 수 가 있었다.

 

 

바다에서 연습할 기회는 갖게 되었지만

매일 혼자서 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가려쳐 줄 지도자가 없는 게 문제 였다. 당시 대한요트협회에서는 코치라 하여 이희원씨라는 분이 상주하고 계셨다. 이희원 코치는 국민대 재학시절에 스나이프를 탓을 뿐이다. 윈드서핑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도자를 찾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한국해양대 항해과 출신 김정식 씨를 초빙하여 해양항로규칙 교육을 받은 것으로 뉴스에 나와 있다. 김정식 씨는 한라해운에서 2만 톤급 화물선을 몰든 1등 항해사였다.

요트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화물선을 몰든 항해사를 Olympic출전할 국가대표선수 에게 코치를 하게 했는가. 개탄하고 있다.(1984614일자 동아일보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