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선수 편중-얼짱 타령, 더 이상 안 보면 안 될까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가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받은 것 못지않게 거둔 또 하나의 성과를 꼽는다면 바로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팬들이 메달과 거리가 먼 선수들의 경기 일정을 자발적으로 댓글을 통해 올리는가 하면 평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선수들이 선전할 때는 큰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그야말로 '훈훈한 올림픽'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3개월이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베이징올림픽 때와는 다른 아쉬움이 존재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매일 많은 메달 소식을 전하면서 성적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다시 예전처럼 한쪽으로 쏠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입니다. 워낙 많은 종목(42개 종목, 한국은 41개 종목)들이 치러지고, 매일 수많은 메달이 쏟아지는 만큼 모든 종목에 관심을 갖는 게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힘겹게 금메달을 따내고도 평소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크게 외면하는 '다소 황당한' 이 상황을 놓고 보면 조금은 납득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송,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박태환이 3관왕을 차지하자 다수 언론들은 박태환의 금메달 분석 뿐 아니라 패션 아이템까지 언급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박태환과 똑같이 3관왕을 차지한 사격 이대명, 한진섭에 대한 조명은 3관왕을 차지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다루지 않아 대조를 이뤘습니다. 또 평소 '비올림픽 종목'이라는 이유로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볼링, 정구 등에서도 금메달이 쏟아졌지만 이를 비중 있게 다룬 곳은 없었습니다. 그보다 중계권을 갖고 있는 방송은 금메달이 나오는 종목을 생중계가 아닌 하이라이트로 편집해 이를 내보내면서 그야말로 금메달의 격을 떨어트리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이를 보다 다양하게 보도할 의무가 있는 언론들 가운데서도 일부는 가벼운 가십성 기사들을 남발한 반면 이들이 어떤 치열한 노력을 겪었고,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훈련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아쉬움을 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요트 남자 레이저급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따낸 하지민 선수의 '금메달 인증 샷'은 많은 것을 시사했습니다. 우리 언론사가 단 한 명도 가지 않은 외로움 속에서 홀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금메달을 획득한 '당당한 국가대표' 하지민은 금메달을 따고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자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금메달 인증샷을 직접 올리는 '고생'을 했습니다. (인증샷 게시판 바로가기) 다행히 반응이 뜨거워서 그의 금메달이 많은 조명을 받기는 했지만 선수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뒤 관심을 받지 못해 자발적으로 나서 '금메달 자랑을 하는' 촌극은 우리 스포츠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언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게 했습니다.
이처럼 메달 하나하나가 귀중한데도 특정 종목, 선수에만 편중해서 금메달 또는 메달 획득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두 번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평소 관심을 받지 못해도 이런 큰 국제 대회를 통해 관심을 받으려 피땀 흘리며 노력해 메달을 따냈지만 '평소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잡아당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소식을 내보내지 않는 건 결국 국가대표 선수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관심은 그렇다 하더라도 4년에 한 번 이 대회만을 바라보며 피땀 흘린 선수들 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하고, 아쉽게 느껴질 만도 할 것입니다.
특히 '얼짱, 훈남' 등을 내세워 특정 선수들을 조명하는 사례 또한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이른바 '광저우 아시안게임 5대 얼짱'이라면서 실력보다는 외모나 몸매에만 관심을 가져 과도한 관심을 유발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선수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습니다. 수영 평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정다래는 외적인 요소 때문에 관심을 받는 게 힘들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고, 당구 얼짱이라 불렸던 차유람 역시 그에 따른 과도한 부담감에 의한 스트레스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메달 없이 귀국해야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금메달을 따낸 뒤 정다래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얼짱'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차유람은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관심 대상에서 멀어졌다는 점입니다. 그 선수가 힘들게 걸어온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박수를 쳐주지는 못할망정 결과가 나쁘다 해서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을 보면 씁쓸함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겪은 바 있었습니다. 귀국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들만 기자회견장에 들어오게 하고, 그렇지 않은 선수는 곧바로 각 협회 일정에 따라 해산하는 '차별적인' 모습은 모든 종목들이 격려 받고 박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운 장면이었습니다(관련 글). 또 다행히 금메달을 따냈던 피겨 여왕 김연아 역시 대회 준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굳이 숙소가 있는 곳을 찾아가 선수를 곤란하게 했던 사례(관련 글) 역시 상당한 비판, 비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더욱 깊이 있고 스포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원하는 독자 그리고 시청자들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우리 언론들의 한계는 참 어떻게 보면 딱하게만 느껴집니다. 물론 다수의 스포츠 언론인들이 체육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직접 발로 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그런 언론인들마저 욕먹게 하는 몇몇 기사들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도 충분한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많은데 메달을 딴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그리고 종목별로 관심 차가 큰 것은 꾸준하면서 고른 관심을 필요로 하는 체육계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적어도 단순히 독자들의 흥미만 유발시키기 위해 '낚시성' 보도, '편향적'인 방송으로 스포츠 언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선수들의 노고로 따낸 메달의 가치가 떨어지는 기사 보도, 그리고 방송 노출은 좀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다 건전하고 발전적인 체육계를 만들기 위해 그저 비인기 스포츠에 대해 관심 갖자고 말로만 하는 것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체육계의 발전을 더 이끌어낼 수 있는 보도, 방송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출처 : 미디어스 김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