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 9대로 매출 9500억 기업 일군 이 사람 … 박순호 세정 회장

[중앙일보]
입력 2011.02.17 00:14 / 수정 2011.02.17 08:11

‘인디안’ 박순호 세정 회장
“내가 만족 못하면 제품 팔 수 없다”


  “팬티에 러닝까지 내가 직접 챙긴다. 현장에 답이 있다. 내가 봐서 만족하지 않는 제품은 소비자에게 팔 수 없다.”

  토털 남성복 브랜드 ‘인디안’으로 유명한 세정그룹의 박순호(65·사진) 회장은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회장은 1974년 부산 의류도매시장에서 맨손으로 속옷 제조를 시작해 세정그룹을 연매출 9500억원의 패션 ‘빅하우스’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 세정·세정과미래·세정건설과 정보기술(IT) 기업 I&C 등 11개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그룹 전체 매출 중 약 8900억원이 패션 관련 매출이다. 제일모직·LG패션·이랜드, 빅3 외에 최대 매출을 자랑한다. 인디안·올리비아로렌·NII·크리스크리스티가 세정이 보유한 패션 브랜드들이다.

  박 회장은 백화점 입점보다는 거리 상권인 ‘로드숍’을 공략, 전국 최대인 900여 개의 로드숍을 운영해 ‘로드숍의 황제’라고도 불린다.

  박 회장은 “배불리 못 먹던 젊은 시절, 가난에 받은 쇼크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개인 기부금액만 30억원이 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2008년 가입하는 등 활발한 기부 활동을 펴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말고 벌어들인 것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겠다는 취지다.

  그는 1946년 경남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박 회장은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신발이 다 떨어져 다섯 발가락이 모두 나올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초등학교까지 4㎞를 걸어 다니면 돌부리가 발가락을 쳐 아프기 일쑤였다고 했다.
 
  그는 “공부도 필요 없고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 동사무소에 6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마산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혈혈단신 부산으로 갔다. 부산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꼬박 사흘. 직감적으로 의류도매시장에서 일을 배우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부산 의류도매시장에 있는 메리야스 공장에서 저녁엔 공장 일을 도우면서 생산기술을 배우고, 낮에는 만든 메리야스를 파는 장사를 했다. 23세 때였다. 그는 또 ‘내의보다는 티셔츠를 만들면 대박이 나겠다’고 직감해 편직기 4대와 재봉틀 9대로 작은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회사 덩치가 커졌지만 박 회장은 모든 일을 직접 챙긴다.

  기자와 인터뷰한 날도 서울 강남 사무실 강당에 걸어 놓은 수백 벌의 모피 코트를 하루 종일 일일이 살펴보고 탈락시킬 것과 출시할 것을 골라냈다. 이에 대해 그는 “나 자신의 동물적 감각을 믿는다”고 말했다. “37년간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과 본능은 회사에서 나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인건비가 싼 해외 공장 이전이 대세인 요즘도 티셔츠와 스웨터 등 주력 제품 공장을 그대로 부산에 두고 있다. 그는 “소재만 발전할 뿐 이너웨어(안에 입는 옷)는 변하지 않는다”며 “이너웨어야말로 최고의 품질이 받쳐 줘야 하는 옷”이라고 공장을 국내에 두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에서 만들 제품과 후진국에서 만들 제품은 따로 있다”며 “일본도 고급 제품은 다 자가 공장에서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이 취미이자 여가”라며 “돈을 쓸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일은 앞을 보고 돈은 뒤로 하라’는 문구를 내내 되뇌며 산다”고 강조했다. 올해엔 새로운 도전도 준비 중이다. 올봄 아웃도어 브랜드 ‘센터폴’을 새롭게 출시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남녀 유니섹스 브랜드도 새로 만들 계획이다. 그는 “인디안 브랜드는 제품 품질이 훌륭하지만 브랜드 이름이 보통명사라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세계 시장에서 먹힐 만한 유니섹스 브랜드를 새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