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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written by 장영주 선생님

조광환|2023-08-04 11:16:20|조회수: 356

저는 요즘 어느 선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의 사연은 간단했습니다. 물론 저는 만난 적이 없는 선수입니다.

 

저는 ㅇㅇ시도 실업팀의 선수입니다. 저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망연히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의 미래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떤 계획을 갖고 그 실마리를 붙든 것도 아닌 그저 장차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참을 헤매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저의 등을 툭 치길래 돌아보았더니 동식(가명)선배였습니다. “? 소식도 없이 선배가 갑자기 웬 일이세요? 하는 인사가 떨어지기도 전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 안다.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없어.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책을 읽어. 나 때야 책이 없어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아? 우리나라 대표팀이나 실업팀 지도자, 선수들 가운데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 보았어?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목표와 발전을 위해 스스로가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해. 안 그럼 결국은 너희들도 종국에는 내 꼴이 돼. 알겠지? 얼굴 보았으니 나 간다. 다른 친구들에게 안부 전해 줘. 또 보자.“ 하고는 도망치듯 인사할 사이도 없이 떠났습니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풍문에 그 선배는 오랜 방황 끝에 택배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겠습니까? 다만 자기가 원하지 않은 일을 호구지책으로 마지못해 한다는 것은 징벌과 같은 것이기에 내 꼴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싶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는 실업팀에 들어온 지 벌써 5년차에 이르렀지만 경기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던 차에 그 선배가 불을 지르고 갔습니다.

 

저는 그 선배가 다녀간 뒤에 책장에 꽂혀 있는 날쌔고 슬기롭게 제1,2,3권을 전에는 심도 있게 읽어 보지는 않았으나, 그 선배가 다녀간 뒤에 다시 그 책을 꺼내 들쳐 보았지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지도자만 믿지 말고 선수 스스로가 공부하라는 그 선배의 말도 실행할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해질 뿐입니다.

혼자서 고민 끝에 마땅히 상의할 사람도 없기에 망설이다가 선생님께 여쭈어 보기로 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맞는 충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네가 제기하는 고민은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단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라네. 즉 선수, 팀을 관리 감독하는 협회 집행부 임원들 가운데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적고 지도자들 게다가 선수들 스스로가 목표를 세워 달성하겠다는 의지와 의욕이 부족하니 삼박자가 다 어긋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시스템의 문제라는 거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방을 맞았어. 아마 4~5학년 무렵으로 기억되는데 讀書百遍 意自通을 일본 발음과 한자로 배웠어. 지금도 일본 발음으로 읊조릴 수가 있다네.

근데 그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요즘에 <讀經 77938,000>을 사서 읽는 중에 그 말이 옛날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동우(蕫遇)라는 문장가의 말임을 새삼 알게 되었어.

동우는 그에게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받아들여 가르치지 않고 讀書百遍 而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절로 보인다)”고 하면서 반드시 책을 먼저 읽으라고 일렀다네. 배우러 온 자가 그것은 간절히 바라는 바이지만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고 하자 세 가지 한가한 때를 이용하라고 일렀다네. 그 세 가지 한가한 때가 무엇이냐고 되묻자 그는 겨울은 한 해 가운데 한가한 때고 밤은 하루 동안의 한가한 때고 장마철은 계절 가운데 한가한 때다고 하면서 책을 읽을 겨를이 없다는 사람은 겨를이 있어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꼬집었다네. 맞는 말이지 않은가?

그가 든 세 가지 때 말고도 책을 읽을 겨를은 많다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 속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시간,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 쓸데없이 허비하는 시간, 텔레비나 휴대폰에 꽂혀 있는 시간, 물가에서 바람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우리가 시간을 관리하기에 따라서는 책을 읽을 쪽짬은 넘쳐날 수밖에.

 

내가 자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2000년 전에 동우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싶네. 가라사대 먼저 책을 읽으라! 그 동안 책과 거리를 두었던 사람은 누구나 문해력(文章解得力)이 약한지라 책을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라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읽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요트경기에 관한 책은 소설처럼 읽히는 책이 아니므로 한 번 읽고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돼. 열 번, 수무 번 그래도 모자라면 몇십 번이고 이해할 때까지 거듭 읽어야 할 걸세.

 

맹자는 공부는 구방심(求放心)에 있다고 했어. 방심은 마음을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놓아두는 것이야. 이 방심 상태에서 마음을 먼저 건져 내야 한다는 것일세. 한 줄 읽고 이 생각하고 할 장 읽고 저 생각해서는 백날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거야. 문을 닫아 걸고 마음부터 붙들어 매서 책을 읽으니 그 효과가 엄청나더라는 선인들의 말을 허트루 들어서는 안 되네.

덤벙대며 의욕만 앞세우는 것도 문제고 많이 읽겠다고 서두르는 것도 문제이니 조금씩 끊어서 읽고 되새김질하는 소의 독서법을 익혀야 해. 공부가 진력이 난다고 꼭 내가 이 고생을 해 가며 읽어야 하나?” 라는 말을 입에 담아서도 안 돼. 공부의 지름길은 망하는 길이야.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전술과 전략 그리고 이론과 기술은 겹겹이 포장된 물건과 같아서 한 겹 한 겹 벗겨 내야 끝에 가서 알맹이를 볼 수 있어.

 

고기는 씹을수록 맛이 있듯이 <...날쌔고 슬기롭게>도 마찬가지라네. 거듭하여 읽는 가운데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고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됨으로써 책을 읽다가 벅차오르는 순간이 있다네.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펄떡 펄떡 뛰기도 할 거야.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배운 것을 익히기 위해 친구를 꼬드겨 바다에 나가 연습으로 익히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지경에 이를 거야. 자기의 재능을 걱정하지 말고 이런 때 차분히 목표를 세워서 책을 읽고 배운 것을 단계적인 훈련에 들어가 보게.

 

자네는 <470의 정상이 보인다>는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의 저자인 뉴질랜드의 해미시 윌콕스는 세계선수권의 우승을 목표로 겨울에 100일 동안 오직 자기들 한 척만으로 훈련을 했어. 왜 겨울을 택했는가 하면 겨울바람은 여름 바람과 달리 변풍이 심하지 않고 풍속과 풍향이 안정되어 있어 계획에 따른 훈련을 하기에 안성맞춤이거든. 날씨 때문에 훈련을 거르는 일이 없다는 거지.

그 결과 1981년부터 1984년까지 4년에 걸쳐 세계선수권에서 3번의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네. 그들이 100일 훈련을 할 적에 협회의 지원이 있지도 않았고 코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 오직 자기들 470 한 척만으로... ...

 

<날씨고 슬기롭게> 1,2,3권은 2011년 말무렵에 출간되었어. 한 권당 1,000권씩의 책들은 다 나가고 지금은 품절상태야. 근데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왜냐하면 올해 후속편인 제4,5,6,7권이 발간되었는 데도 도통 입질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지금 나머지 제8,9,10,11권이 완성되어 발간을 기다리고 있지만 먼저 발간한 네 권이 그대로 쌓여 있으므로 발간을 멈춘 상태라네. 이와 같은 현상은 단체고 구성원이고 총체적으로 보추도 늘품성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니 나와 같은 아웃사이더도 단체의 앞날이 걱정될 수밖에.

 

 

마지막으로 자네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에게 부탁하노니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일단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해미시 윌콕스 팀처럼 단기가 됐건 장기가 됐건 스스로의 형편에 맞는 목표를 세워 단계적으로 접근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력을 다 해 보고 다음 일을 계획하기 바라네. 이러한 노력의 경험은 다음에 무슨 일을 하거나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게나. 선수들 모두의 건투와 행운을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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